외국영화/미쿡영화
비포 선라이즈 그리고 비포 선셋.
CICCIT
2009. 5. 20. 14:11
줄창 떠들기만 하는 영화. CG는 커녕 편집도 안 한 듯한 영화. 밑도 끝도 없이 롱테이크로 초지일관하는 영화, 촬영시간과 상영시간에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영화로 추앙받으며 매니아 층을 형성한 영화, 무려 9년이 지난 시점에도 불구하고 속편을 제작한다는 사실만으로 화제에 올랐던 영화. 이런 영화가 어디에 있냐구? 보는 이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특별하다"와 "특이하다"로 나뉘지만 모두가 "독특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비포 선라이즈"와 그 후속편 "비포 선셋"이다.
(Before Sunrise, 1995)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도입되며 대학생들 사이에 베낭여행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너나 할 것 없이 알바로 돈 모아 꼴랑 비행기 티켓만 사다가 베낭메고 생거지꼴로 유럽 한 바퀴 돌고 오는 게 시대의 흐름이었을 정도였다. 서점에는 300만원으로 한 달 유럽베낭여행하기, 난 이렇게 베낭여행을 했다 등의 책들이 넘쳐났다. 이에 따라 유럽하면 런던, 파리, 로마 뿐이던 대한민국에 프라하, 비엔나 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해외여행은 더 이상 있는 자(?)들과 대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여행지가 다양화된 만큼 여행자도 다양화되었다. 특히 원화 강세로 해외 여행객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형편이었다. 수출에 비해 수입이 급증하자 방송에서는 과소비를 잠재워야 한다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실은 이게 다 OECD 가입하려고 환율갖고 장난친 거라더라. IMF도 그래서 터졌다나 뭐라나.. ㅋㅋ 하여튼 "비포 선라이즈"는 (좀 과장하면) 당시 우리에게 선망의 상징이었다. 쏘세지 이름 쯤으로 기억되던 비엔나는 "비포 선라이즈"를 통해 낭만과 로맨스의 상징으로 탈바꿈했고 아름다운 여행지에서의 짧은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마도 두 주인공 제시와 셀린이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돈이 없어 공원 마당 같은 데서 자면서도 어느 정도의 품격은 유지하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모든 소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과 동일시가 되면 될 수록 빠져드는 법이니 말이다.
아름다운 비엔나의 야경은 이들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했다.
셀린(사실 불어 발음으로는 셀린느에 더 가까운)은 프랑스의 여대생이다. 방학동안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고 개강에 맞춰 베낭여행의 상징 EUROSTAR를 타고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다. 앉은 자리의 주위 사람들이 다툼을 하는 등 시끄럽게 굴자,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거기에서 미국인 제시를 만난다. 제시는 마드리드에 유학온 여친을 만나러 갔다가 괜히 실연만 당하고 미국에 돌아가는 길이다. 다음날 비엔나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유로스타를 탔던 것. (그런데 사실 마드리드에서 비엔나를 가는 사람과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를 거쳐 파리에 가는 사람에 도대체 어떻게 기차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건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이들은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윽고 비엔나에 다다르자, 제시는 셀린에게 비엔나에서 자신과 함께 머무를 것을 제안하고 셀린이 그것을 받아들여 둘의 대화는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도 현실과의 차이는 좀 있다. 이렇게 예쁘고 잘 생겼는데 속이 꽉 차고 오픈 마인드인 청춘 남녀를 여행지에서 만난다는 설정은 영화니까 그렇다고 쳐도 자국어처럼 영어를 술술 구사하며 마음 속 깊은 얘기까지 나누는 것은 우리에겐 쉽지 않은 얘기이다. 우리는 언어체계 자체가 완전히 달라서 의사소통은 할 수 있되, 깊은 얘기를 멋있게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시 우리는 북한 사람이나 조선족 내지는 교포를 만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아니면 영어를 겁나게 잘 해 주시던가.)
이렇게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지껄이고 있는 이유는 사실 이 영화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비엔나의 아름다운 야경도, 두 배우의 외모가 아닌 그 대사를 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연출자는 그 제목에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살짝 흘리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왜 BEFORE인가?
두 영화의 제목은 우리 말로 하면 "해 뜨기 전에"와 "해 지기 전에"이다. 단순히 둘의 만남 내지는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기차, 비엔나 등의 제목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제목을 사용했고 BEFORE라는 단어를 사용, 그 끝이 이미 예정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해가 뜨면, 해가 지면 이들은 헤어져야 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숨을 죽인채, 그들의 만남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아껴서 뭐해?
그런데 그 끝이 정해진 시간은 단지 이들의 만남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의 것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지금 학생이라고 해서 학생의 시간이 영원한 것도, 지금 직장인이라고 해서 직장인의 시간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영원한 것도 아니며 지금 행복하다고 해서 그 행복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모든 삶이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죽음이란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인지, 아니면 너무나 먼 것이어서인지 인간은 이 죽음이라는 끝을 크게 인식하지 않은채 살아간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그 끝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한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채 매일 같은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 특히 1편이라 할 수 있는 비포 선라이즈의 전반부에는 진지하고 이성적인 대화가 많이 등장한다. 셀린은 전쟁과 언론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페미니즘은 남자들이 섹스를 하기 위해 만든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더군다나 할머니에 관해 말하며 자신이 할머니와 가깝기 때문에 '죽음을 앞둔 노인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늘어 놓는다.
이러한 모습은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죽음을 알아서가 아니라 죽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부족한 인간의 군상인 것이다.
이들 앞에 점쟁이와 길거리 시인이 등장한다. '흘러가다 현재에 걸린 우리','그대는 나를, 난 그대를 이끄네' 알 듯 말 듯한 서로의 마음 속에 점쟁이의 말이 스며든다. 사랑?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행복일까? 제시는 단호하게 얘기한다.
사랑은 혼자되기 두려운 두 사람의 도피 같아,,, 무조건 주는게 사랑이라는 건 다 개소리야, 사랑은,, 이기적이지
추억할 게 없어서 최악이라는 제시의 말. 셀린은 상처받은 제시의 영혼을 느낀다. 그들이 서로 안에서 시간을, 죽음을, 인생을, 사랑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건 끝이 있어. 그래서 시간이 더욱 소중히 느껴지는 거야.
그 끝이 예정되어 있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 그것이 인생이다. 그 끝을 넘어서면 깨어지는 환상, 그것이 사랑이다.
어제 네가 한 말.. 오래된 부부는 서로 뭘할지 뻔히 알기에, 권태를 느끼고 미원한댔지?.. 내 생각은 반대야.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거야.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건지.. 그게 진정한 사랑이야.
예정된 이별 앞에서 이들은 그 끝을 넘어서고자 하는 충동에 빠진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사랑이기에 그렇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모르기에 그 한계에 너무도 쉽게 도전하고 사랑은 너무나 달콤해서 모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타협(6개월 뒤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서로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9년 후,
이들의 예정된 이별의 짧은 만남이 다시 시작된다.
시간이 흘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 파리에 출판 기념 사인회 일정으로 온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굳이 책을 불어로 출간하게 된 것도 파리에서 기념 사인회를 갖게 된 것도 그가 기획하지는 않았겠지만 은근히 바래온 일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9년 전의 기억, 셀린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기념 사인회에 오는 셀린. 이또한 다분히 의도적이다. 제시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것, 그가 쓴 내용이 자신과 그의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기념 사인회를 파리에서 가진다는 것. 셀린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시가 오는 날을 기다려왔고 그 날이 오자, 제시에게 달려온 것이다.
사랑은 이렇다. 처음의 한 순간이 우연일 수는 있지만 이후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전 세계 45억 인구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이 자체로 사랑은 이미 기적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서로를 찾게 하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태어나는 과정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과정이다. 이렇듯, 누가 봐도 확실한 사랑임에도 이들은 조심스럽다. 이제 이들은 9년이라는 시간을 흘려 보냈고 그래서 어른이 된 것이다.
내 결혼식을 몇 달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도 내내 너에 대해서만 생각했어. 심지어 거기 가는 길에서.. 우산을 접고 일터로 가면서도 브로드웨이 13번가를 걸으면서도.. 내가 미쳐가는 줄 알
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너 때문인거 같아..
(Before Sunset, 2004)
제시는 자신이 보내온 시간을 셀린에게 이야기한다. 셀린은 그만큼 아팠던 자신의 시간으로 그의 시간을 느낀다. 또다시 서로를 느끼는 두 사람. 9년동안 만날 수 없었는데 이들의 사랑은 오히려 더 깊어진 듯 하다.
전편의 비엔나와 마찬가지로 비포선셋의 파리는 영화의 아름다움을 더 해 준다.
너네 할머니가,, 일주일 더 늦게 돌아가셨거나,, 아니면 우리가 일주일 더 먼저 만나기로 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삶은,, 정말 많이 달라졌을거야,,
셀린은 9년 전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시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기에 그들의 삶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만약 그 때 그들이 만났다면 그랬다면 그들은 지금 함께일까? 그들의 삶이 하나가 되어 행복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Memory is wonderful thing if you don't have to deal with the past...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추억은 아름다운 거겠지.
과거는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9년전 이들이 다시 만났더라면 오히려 퇴색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사랑의 슬픈 딜레마이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왜? 이를 남자로 한정했을까? 그럼 여자는 첫사랑을 잘 쉽게 잊는다는 얘기인가? 얼핏 들으면 멋지게 들리는 이 말. 한 때 담배 상표 말보로의 원 뜻이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tic Object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이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내겐 남은 게 없어 너와 보낸 그날 밤, 나의 로맨티시즘을 모두 쏟아 부었기 때문이야. 니가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아.."
남자가 감성에 더 가까운 동물이고 여자가 이성에 더 가까운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여자는 태생적으로 사랑을 받아야 사는 동물이다. 아이를 낳고 보살피는 본능을 갖는 개체이다. 그 본능은 항상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랑없이 살 수 없는 동물이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 한다.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가 남자보다 덜 할 수 있는 것 뿐이다. 그것을 두고 독하다.. 차갑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심하다. 거꾸로 남자는 종족번식의 본능을 갖는다. 그래서 그 종족번식의 본능과 사랑을 동일시하는 함정에 자주 빠진다. 1차적 목적이 사랑이 아닌 섹스에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떠나가면 뒤늦게 깨닫는다. 아... 이것이 사랑이었구나. 그래서 꼭 뒤늦게 삽질을 시작한다. 첫사랑을 못 잊는다느니 어쩌느니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남자가 이래서, 여자가 이래서 누가 더 우수하고 누가 더 열등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 영화는 이러한 시간에 빗대어 인생을 얘기하고 인생에 기대어 사랑을 얘기하며 이들의 입을 빌려 남녀의 차이까지도 얘기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리하자. 영화는 끝이 정해져 있는 만남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끝도, 그 끝을 예정한 시간도 이들이 만나기 전에는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시작되며 그 끝을 예정한 시간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된다. 너무나도 소중한 나머지 이들은 그 끝을 뛰어넘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그 끝을 뛰어넘지 못하고 9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동안 이들은 인생을 경험했고 어른이 되었다. 그 끝을 넘어서면 후회밖에 남지 않을 것이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레였던 9년 전, 그리고 그 끝을 뛰어넘지 못해 후회 속에 살아야 했던 9년이라는 시간. 끝이 예정되어 있는 우리네 인생. 그 끝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다시 말해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영원을 노래하게 하는 사랑. 선택하는 순간부터 밀려드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과 그보다 더 큰 선택하지 않은 시간의 후회 속 지독한 딜레마.
"Maybe... you're gonna miss that plane..."
"I know"
9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이들은 용감하게도 사랑의 역주행을 시도한다. 아니, 그 9년의 후회가 있었기에 이렇게 용기있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 그러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끝에 대해 무지하기에 쉽게 끝을 얘기할 수 있는 교만인가? 끝을 알기에 소중함을 깨닫게 된 지금의 시간인가? 그 한계를 처절하게 깨우쳤음에도 다시금 그 한계를 향해 달려나가는 지독한 사랑의 딜레마인가?
인생에 정답은 없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니까... 많은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덜 후회할 것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 과정을 통해 끝없이 진화를 시도하며 사실은 늘 같은 자리를 멤도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 말이다.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도입되며 대학생들 사이에 베낭여행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너나 할 것 없이 알바로 돈 모아 꼴랑 비행기 티켓만 사다가 베낭메고 생거지꼴로 유럽 한 바퀴 돌고 오는 게 시대의 흐름이었을 정도였다. 서점에는 300만원으로 한 달 유럽베낭여행하기, 난 이렇게 베낭여행을 했다 등의 책들이 넘쳐났다. 이에 따라 유럽하면 런던, 파리, 로마 뿐이던 대한민국에 프라하, 비엔나 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해외여행은 더 이상 있는 자(?)들과 대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여행지가 다양화된 만큼 여행자도 다양화되었다. 특히 원화 강세로 해외 여행객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형편이었다. 수출에 비해 수입이 급증하자 방송에서는 과소비를 잠재워야 한다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실은 이게 다 OECD 가입하려고 환율갖고 장난친 거라더라. IMF도 그래서 터졌다나 뭐라나.. ㅋㅋ 하여튼 "비포 선라이즈"는 (좀 과장하면) 당시 우리에게 선망의 상징이었다. 쏘세지 이름 쯤으로 기억되던 비엔나는 "비포 선라이즈"를 통해 낭만과 로맨스의 상징으로 탈바꿈했고 아름다운 여행지에서의 짧은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마도 두 주인공 제시와 셀린이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돈이 없어 공원 마당 같은 데서 자면서도 어느 정도의 품격은 유지하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모든 소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과 동일시가 되면 될 수록 빠져드는 법이니 말이다.
셀린(사실 불어 발음으로는 셀린느에 더 가까운)은 프랑스의 여대생이다. 방학동안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고 개강에 맞춰 베낭여행의 상징 EUROSTAR를 타고 파리로 돌아가는 길이다. 앉은 자리의 주위 사람들이 다툼을 하는 등 시끄럽게 굴자,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거기에서 미국인 제시를 만난다. 제시는 마드리드에 유학온 여친을 만나러 갔다가 괜히 실연만 당하고 미국에 돌아가는 길이다. 다음날 비엔나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유로스타를 탔던 것. (그런데 사실 마드리드에서 비엔나를 가는 사람과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를 거쳐 파리에 가는 사람에 도대체 어떻게 기차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건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이들은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윽고 비엔나에 다다르자, 제시는 셀린에게 비엔나에서 자신과 함께 머무를 것을 제안하고 셀린이 그것을 받아들여 둘의 대화는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도 현실과의 차이는 좀 있다. 이렇게 예쁘고 잘 생겼는데 속이 꽉 차고 오픈 마인드인 청춘 남녀를 여행지에서 만난다는 설정은 영화니까 그렇다고 쳐도 자국어처럼 영어를 술술 구사하며 마음 속 깊은 얘기까지 나누는 것은 우리에겐 쉽지 않은 얘기이다. 우리는 언어체계 자체가 완전히 달라서 의사소통은 할 수 있되, 깊은 얘기를 멋있게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시 우리는 북한 사람이나 조선족 내지는 교포를 만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아니면 영어를 겁나게 잘 해 주시던가.)
이렇게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지껄이고 있는 이유는 사실 이 영화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비엔나의 아름다운 야경도, 두 배우의 외모가 아닌 그 대사를 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연출자는 그 제목에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살짝 흘리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왜 BEFORE인가?
두 영화의 제목은 우리 말로 하면 "해 뜨기 전에"와 "해 지기 전에"이다. 단순히 둘의 만남 내지는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기차, 비엔나 등의 제목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제목을 사용했고 BEFORE라는 단어를 사용, 그 끝이 이미 예정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해가 뜨면, 해가 지면 이들은 헤어져야 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숨을 죽인채, 그들의 만남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아껴서 뭐해?
그런데 그 끝이 정해진 시간은 단지 이들의 만남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의 것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지금 학생이라고 해서 학생의 시간이 영원한 것도, 지금 직장인이라고 해서 직장인의 시간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영화의 전반부, 특히 1편이라 할 수 있는 비포 선라이즈의 전반부에는 진지하고 이성적인 대화가 많이 등장한다. 셀린은 전쟁과 언론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페미니즘은 남자들이 섹스를 하기 위해 만든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더군다나 할머니에 관해 말하며 자신이 할머니와 가깝기 때문에 '죽음을 앞둔 노인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늘어 놓는다.
이러한 모습은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죽음을 알아서가 아니라 죽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부족한 인간의 군상인 것이다.
이들 앞에 점쟁이와 길거리 시인이 등장한다. '흘러가다 현재에 걸린 우리','그대는 나를, 난 그대를 이끄네' 알 듯 말 듯한 서로의 마음 속에 점쟁이의 말이 스며든다. 사랑?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행복일까? 제시는 단호하게 얘기한다.
사랑은 혼자되기 두려운 두 사람의 도피 같아,,, 무조건 주는게 사랑이라는 건 다 개소리야, 사랑은,, 이기적이지
추억할 게 없어서 최악이라는 제시의 말. 셀린은 상처받은 제시의 영혼을 느낀다. 그들이 서로 안에서 시간을, 죽음을, 인생을, 사랑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건 끝이 있어. 그래서 시간이 더욱 소중히 느껴지는 거야.
그 끝이 예정되어 있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 그것이 인생이다. 그 끝을 넘어서면 깨어지는 환상, 그것이 사랑이다.
어제 네가 한 말.. 오래된 부부는 서로 뭘할지 뻔히 알기에, 권태를 느끼고 미원한댔지?.. 내 생각은 반대야.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거야.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건지.. 그게 진정한 사랑이야.
예정된 이별 앞에서 이들은 그 끝을 넘어서고자 하는 충동에 빠진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사랑이기에 그렇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모르기에 그 한계에 너무도 쉽게 도전하고 사랑은 너무나 달콤해서 모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타협(6개월 뒤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서로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9년 후,
시간이 흘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 파리에 출판 기념 사인회 일정으로 온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굳이 책을 불어로 출간하게 된 것도 파리에서 기념 사인회를 갖게 된 것도 그가 기획하지는 않았겠지만 은근히 바래온 일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9년 전의 기억, 셀린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기념 사인회에 오는 셀린. 이또한 다분히 의도적이다. 제시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것, 그가 쓴 내용이 자신과 그의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기념 사인회를 파리에서 가진다는 것. 셀린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시가 오는 날을 기다려왔고 그 날이 오자, 제시에게 달려온 것이다.
사랑은 이렇다. 처음의 한 순간이 우연일 수는 있지만 이후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전 세계 45억 인구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이 자체로 사랑은 이미 기적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서로를 찾게 하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태어나는 과정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과정이다. 이렇듯, 누가 봐도 확실한 사랑임에도 이들은 조심스럽다. 이제 이들은 9년이라는 시간을 흘려 보냈고 그래서 어른이 된 것이다.
내 결혼식을 몇 달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도 내내 너에 대해서만 생각했어. 심지어 거기 가는 길에서.. 우산을 접고 일터로 가면서도 브로드웨이 13번가를 걸으면서도.. 내가 미쳐가는 줄 알
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너 때문인거 같아..
(Before Sunset, 2004)
제시는 자신이 보내온 시간을 셀린에게 이야기한다. 셀린은 그만큼 아팠던 자신의 시간으로 그의 시간을 느낀다. 또다시 서로를 느끼는 두 사람. 9년동안 만날 수 없었는데 이들의 사랑은 오히려 더 깊어진 듯 하다.
너네 할머니가,, 일주일 더 늦게 돌아가셨거나,, 아니면 우리가 일주일 더 먼저 만나기로 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삶은,, 정말 많이 달라졌을거야,,
셀린은 9년 전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시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기에 그들의 삶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만약 그 때 그들이 만났다면 그랬다면 그들은 지금 함께일까? 그들의 삶이 하나가 되어 행복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Memory is wonderful thing if you don't have to deal with the past...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추억은 아름다운 거겠지.
과거는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9년전 이들이 다시 만났더라면 오히려 퇴색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사랑의 슬픈 딜레마이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왜? 이를 남자로 한정했을까? 그럼 여자는 첫사랑을 잘 쉽게 잊는다는 얘기인가? 얼핏 들으면 멋지게 들리는 이 말. 한 때 담배 상표 말보로의 원 뜻이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tic Object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이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내겐 남은 게 없어 너와 보낸 그날 밤, 나의 로맨티시즘을 모두 쏟아 부었기 때문이야. 니가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아.."
남자가 감성에 더 가까운 동물이고 여자가 이성에 더 가까운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여자는 태생적으로 사랑을 받아야 사는 동물이다. 아이를 낳고 보살피는 본능을 갖는 개체이다. 그 본능은 항상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랑없이 살 수 없는 동물이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 한다.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가 남자보다 덜 할 수 있는 것 뿐이다. 그것을 두고 독하다.. 차갑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심하다. 거꾸로 남자는 종족번식의 본능을 갖는다. 그래서 그 종족번식의 본능과 사랑을 동일시하는 함정에 자주 빠진다. 1차적 목적이 사랑이 아닌 섹스에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떠나가면 뒤늦게 깨닫는다. 아... 이것이 사랑이었구나. 그래서 꼭 뒤늦게 삽질을 시작한다. 첫사랑을 못 잊는다느니 어쩌느니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남자가 이래서, 여자가 이래서 누가 더 우수하고 누가 더 열등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 영화는 이러한 시간에 빗대어 인생을 얘기하고 인생에 기대어 사랑을 얘기하며 이들의 입을 빌려 남녀의 차이까지도 얘기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리하자. 영화는 끝이 정해져 있는 만남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끝도, 그 끝을 예정한 시간도 이들이 만나기 전에는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시작되며 그 끝을 예정한 시간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된다. 너무나도 소중한 나머지 이들은 그 끝을 뛰어넘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그 끝을 뛰어넘지 못하고 9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동안 이들은 인생을 경험했고 어른이 되었다. 그 끝을 넘어서면 후회밖에 남지 않을 것이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레였던 9년 전, 그리고 그 끝을 뛰어넘지 못해 후회 속에 살아야 했던 9년이라는 시간. 끝이 예정되어 있는 우리네 인생. 그 끝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다시 말해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영원을 노래하게 하는 사랑. 선택하는 순간부터 밀려드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과 그보다 더 큰 선택하지 않은 시간의 후회 속 지독한 딜레마.
"Maybe... you're gonna miss that plane..."
"I know"
9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이들은 용감하게도 사랑의 역주행을 시도한다. 아니, 그 9년의 후회가 있었기에 이렇게 용기있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 그러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끝에 대해 무지하기에 쉽게 끝을 얘기할 수 있는 교만인가? 끝을 알기에 소중함을 깨닫게 된 지금의 시간인가? 그 한계를 처절하게 깨우쳤음에도 다시금 그 한계를 향해 달려나가는 지독한 사랑의 딜레마인가?
인생에 정답은 없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니까... 많은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덜 후회할 것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 과정을 통해 끝없이 진화를 시도하며 사실은 늘 같은 자리를 멤도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 말이다.